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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대학교

Dream, Come True 꿈, 희망, 미래
미션과 비전과 열정을 가진 글로벌 리더 양성

교수

시의 정원,
경동대 캠퍼스를 거닐며

현재 온사람교양교육대학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월간문학>과 <오늘의 문학>에서 시와 시조 두 부문에 걸친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이하(李夏)라는 필명으로
창작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하늘하나 구름하나>시동인지와 <삶과 표현의 세계>등이 있다.

이 만 식 교수

시의 정원, 경동대 캠퍼스를 거닐며...

빈터
그곳에 들면 늘
고독하다.

네 안의
조그만
빈터.

앞뒤 호수가 안겨 있고 설악과 동해가 둘러 있는 경동대 교정은 나의 시작(詩作)의 산실입니다. 평소 지닌 시상을 연구실에서 손질하고 담아둔다는 것이 아니라 캠퍼스 자체가 시적 재료를 제공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천혜를 두고 연구실을 누정에 비기는 동료교수도 많고 보면 내게만 넘치는 분은 아닌가 봅니다.

캠퍼스를 거닐다가 이곳에 오면 이번에는 어디에 있을까 꼭 찾아보는 캠퍼스 명물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 입구에 위치한 경동호(봉포호)의 신비로운 갈대섬입니다.

지금이야 교문 옆이지만 개교 한 해 전에는 진입로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밭둑길을 따라 이 호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선덕관 뒷산 망향비석 터에서 보면 아늑한 숲 속 빈터처럼 그 곳 호수는 미동도 않은 채 안겨 있곤 했습니다.

고적한 호수 한 가운데는 농구장만한 갈대섬이 있고 제법 버드나무 몇 그루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갈대섬이 사라지고 없어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의아하여 물가에 내려서 한참 찾고서야 반대편 골짜기에 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버드나무가 아니었다면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이 섬은 떠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정착지가 달랐습니다. 그 뒤로 이 호숫가를 거닐 때면 전에 보아 두었던 갈대섬이 어디쯤 있는 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건너편에 있다가 교문 쪽으로 와 붙어 있으면 상봉이라도 하듯 적이 반갑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호숫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네 둘이 사귀고 있다는데 서로 진실하게. 오늘 본 저 갈대섬의 위치가 1년 뒤에도 그대로 있다면 자네들 사랑은 필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걸세.”
지금도 가끔 뒷산 공터에 올라 이 호수를 봅니다. 그 때마다 참 빈터라는 게 숲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양현원 뒤쪽으로 보이는 설악산 울산 바위와 그 뒤로 천화대, 그리고 이어지는 마등령 능선은 수묵담채화로 그린 심산유곡 풍경 그대로입니다. 맑은 날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에 돌기처럼 돋은 까슬한 산장의 흔적을 찾는 일도 재미있거니와 꼭 한옥 용마루를 닮은 그 능선을 눌러보는 재미도 여간 아닙니다. 양현원 뒷산 산림로는 산책길로 제격인데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천진호 옆을 돌고 왼쪽이면 숭례봉이라 이름 붙여본 여학생 기숙사의 뒷산 산봉으로 오르게 됩니다. 운동장 화단에서 보면 야산 뒤로 늘 듬직하니 서 있는 신선봉을 대하게 됩니다. 감추고 치장함이 없이 당당하여 여간한 세파에는 미동도 않는 군자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중에서 황철봉을 배경으로 선 울산바위는 참으로 신통합니다. 속초 입구인 외옹치 쯤에서 보거나 동우대학 입구에서나 시내에서나, 늘 따라와 마주보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고성 땅인 경동대 뜰에서도 마찬가지이니 그 방향이 경이롭습니다.

경동대학교 사진

울산바위
속초의 등대는 뒤뜰에 있다.
턱 끝으로 가리킬 만한
솟대 높이 쯤에서
속초로 오는 모든 바람과
먼 바다 물결, 등대도 되지만
삼거리 이정표나
터널을 벗어나며 만나는
역사 앞 흰 깃대와 같은
낯익은 표석이다.
동구 앞자락 느티나무가 아니다.
뒤뜰 둔덕 대나무 숲처럼
사철 그 자리에 서있어
잎 피고 그늘지는 둘레가 속초인 줄을
속초에 사는 이나 오가는 이
슬픈 이나 즐거운 이 모두 안다.
말이 없기는 돌하루방이지만
앞서 드러내지 않고
의뭉하기는 장승이듯 하지만
부라리지 않고
먼저 맞이하고 나중 작별하는 석등이다.
속초에는
동에 살거나
고성 양양 남북 어디로 오가든
돌아서거나 외면하지 않고
어느새 따라와 그윽하게 마주서는
아버지와 같은 등대를 만난다.

또 하나 경동대에 있음으로 해서 아침 해돋이를 맞이하는 행복이란 더없는 자랑거리일 것입니다. 어느덧 수면 위에 훌쩍 솟아 있는 해를 차창 밖으로 가늘게 눈뜨고 바라보거나, 새벽녘 부지런 떨며 와서 대학 앞바다 봉포 해변에서 아침 해의 진홍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늘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버립니다.
새 천년을 맞이한다고 부산을 떨던 이천 년 첫 해, 대학종합평가를 앞두고 여러 일을 총괄하고 있던 나로서는 창작은 절필 상태였고, 밤샘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대학 캠퍼스에서 맞는 새벽은 그동안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주 대하지 못했던 일출 여명이라는 황홀감을 선사했습니다. 연구실에서 바라보는 새벽 바다는 아기 눈 뜨듯이 어느 때는 초롱하고 어느 때는 게슴츠레 하기도 합니다. 실크 자락처럼 열리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새벽 5시쯤 퇴근을 하게 되면 용포 둔덕이나 천진 방파제 앞에 차를 세우고 아침 바다를 대하곤 했습니다.

속초 바다, 봄
바닷바랍은
발정하는 바다의
유혹이다.
덤덤한 육지를 향해
수없이 보내는
연서이다.
때로 밤바람이 거센 후
아침 해변을 보면
알 까러 오는 파도가 분주하다.

용포바닷가는 지금은 카페와 요양원이 있지만 호적한 농막 한 채와 초소 그리고 묵밭이 반인 채 누운 무덤덤한 야산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진은 <국화꽃 향기(“가을동화” 원작)-김하인 작>에서 묘사한 대로 경동대 진입로를 지나 해변으로 접어드는 조붓한 도로에서 오른 쪽으로 초승달형의 해변이 푸른 바다를 담고 있는 어촌입니다. 나는 이 곳에 들면, 어항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를 보며 흰 백지 편지지와 붉은 우편함이 있는 등대 우체국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이 바로 품안에 안기는 해변은 늘 평화롭습니다. 그 해는 이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매일 대하다시피 했습니다. 세상의 지고한 힘과 왕성한 소생이 무엇인지 실감했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삶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탄생하고, 빛은 어둠을 잉태한다’라는 음양의 진리, 빛과 어둠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동양학의 철리에 깊이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사색과 탐미와 그리고 멍한 비움도 함께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일출 사진

일출
커억하니 뱉었으면 좋겠네.
내 안의 뜨거운 핏덩이.
너무 붉게 질주하여 뚝뚝 떨어지는
칸나의 꽃대 속으로
차가운 바람 들숨 쉬듯 부풀리어
커억하니 뱉었으면 좋겠네.
뜨겁게 산다는 것이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이
질주로 응고된 화기임을
삶의 가운데 서서
불현듯 보았네.
내 체온보다 뜨겁게
내 피보다 검 붉게 살아간다는 것이
들뜬 해돋이 순간임을
이제 카악하니 뱉어보면 알겠네.
환호로 물든 저 숫한 노폐물
모두 씻고 보면 제 빛깔 그대로임을
헉, 하니 뱉은
다음의 날숨이면 알겠네.

줄곧 신설 학교에만 몸담아 온 나로서는 늘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5월의 신록이면 그늘도 함께 무성해지는 나무 아래에서 바람의 촉감을 느끼거나, 10월의 제법 찬바람에 몰려다니는 낙엽의 한 떼를 따라 거닐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설립자 우당 선생께서 묘목보다 성장목을 주로 심어 신설 교정임에도 초여름은 꽤 연륜 있는 그늘을 만들어 놓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이제 제법 꽃들도 무성합니다. 특히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는 보기 드문 산수유, 홍자단, 낙상홍, 해당화, 칸나와 오월이면 화려한 군무를 이루는 봄날의 철쭉 영산홍을 만나는 기쁨은 여간 아닙니다. 친숙한 진달래, 개나리, 벚나무 등 봄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덧 초여름이 되고 맙니다. 캠퍼스 수목과 함께 하면 세월 흐르는 줄 모르겠습니다. 진달래 말이 나오니 제1회 관광경영학부(당시 인문사회학부) 입학생들이 생각납니다. 첫 해 식목일을 기념하여 자발적으로 주변 야산에서 이를 채취하여 심던 애교심과 정성이 떠오릅니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꽃나무를 살피는 일은 나만의 설렘을 줍니다. 대학 기숙사 숭례원의 식당 이름이 라일락이지만 라일락을 본 이는 아마 드물 것입니다. 뒤편에 아주 작은 묘목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움을 돋우는 라일락 꽃차례에서 흰 종이에 받을 수만 있다면 종일이라고 받고 싶은 은은한 향기는 사월을 그래서 더 설레게 합니다.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 '수수 모양으로 꽃이 달린 나무'하여 '수수꽃다리'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프랑스에서 '리라(lilas)' 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 자체가 시적이면서 꽃말은 여기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사랑의 정서(붉은 꽃)', '젊은 날의 초상(보라 꽃)', '순결 순진(하양 꽃)', '아름다운 맹세'인데 대개 순수하고 애잔한 청춘의 사랑을 뜻합니다.

라일락에게
호리병처럼
신비한 생의 그릇
다 비우고 나면,
너처럼 머물다
돌아오는 계절
내게는 없네.

콧잔등에 앚은 하늘
연신 푸른 재채기를 해대는
사월의 오후

안녕, 나의 사랑
사춘기 끝 무렵 가볍게 아픈
결별과 같은 꽃이여

꽃차례에 내린 햇살
하얗게 일더니
오늘은 연록 그늘에 놀던 바람
너의 향기 자근 물어올 뿐이네.

갈대섬 호수, 울산바위, 일출 바다 그리고 꽃과 수목은 나의 친근한 동무이자 연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행복을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싱싱한 젊음이 캠퍼스 곳곳에 있으니 나 또한 중년을 잊습니다. 맑고 활기찬 제자들의 웃음과 목소리가 연구실 유리창에 닿을 때마다 그들의 가벼운 발걸음처럼 흥겨울 때가 많습니다. 경동대생들은 한결 같이 심성이 곱습니다. 더러 신입생 때는 일탈이 있다하더라도 삼사학년이 되고 보면 반듯하고 격이 있습니다. 여러 학교를 다녀보더라도 예의 바르고 성실한 면모는 과히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두루 가르치러 다니시는 강사선생님들이나 내교하시는 분들의 한결 같은 방담이니 말입니다. 제자 덕에 선생 칭찬으로도 들려 매우 유쾌할 때가 많습니다.

연구실에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죽도 주변의 파도가 작게 눈에 들어오고 삼삼오오 교문으로 향하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경쾌합니다. 아무래도 나도 이 연구실을 정자인양 여겨 차운(借韻으)로 흥취를 돋우어야겠습니다.

碧留雪臥齋(벽류설와재)
碧波留東窓(벽파류동창 - 푸른 파도 동창에 머물고)
雪山臥西問(설산와서문 - 눈 내린 설악산 서문에 누우니)
不吟猶自醉(불음유자취 - 옲조리지 않으려도 절로 취하여)
主霑潤詩韻(주점윤시운 - 주인은 시의 정에 흐뭇하게 젖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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